디자인 도시.
서울.
좋다. 디자인 도시.
유치해보여도 말로만 들으면 참 좋다.
당장이라도 서울이 엄청나게 예뻐질 것 같아 디자인계의 앞날이 밝아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토스트 아줌마가, 떡볶이 할머니가 안보인다.
구두닦는 아저씨도 보이지를 않는다.
길가에 반드시 있어야 할 그들이 갑자기 인비져블이 되어버렸다.
쉬는시간에 친구들과 달려나오면 막 구워진 토스트를 팔던 아줌마.
추운 겨울, 남자친구와 추위를 달래며 먹었던 오뎅과 떡볶이를 팔던 그 유쾌한 할머니.
한달에 한두번씩 구두 몇켤래씩 들고 찾아가 한참을 수다 떨었던 구두닦는 아저씨가 정말로 사라졌다.
그 좋아보이는 디자인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도시 미관을 해치는 가판대가 철거되고 있다고 한다.
아니. 뭐라고? 당신은 나의 소소하고 감성이 담긴 군것질거리가 구질구질해보이는가!!!
디자인도시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거리의 미관을 해치는 것들을 치우는 것. 이라면.
그것의 기준을 세운 세운 사람은 진정,
디자인과 문화의 상호관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인가?
구두수선 상자와 떡볶이 포장마차,
동대문 길가의 정신없이 분주한 가판대,
비뚤비뚤 길목을 600년간 지켜온 피맛골,
제발 없애지 말아라.
다른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만의 정서가 담긴 개성있는 문화이다.
재개발도 좋고 도시미관 업그레이드도 좋다.
그런데 디자인은 단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깔끔한, 하이테크닉에서만 오는것이 아니다.
디자인은 정서가 담긴 문화를 기반으로 해야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적 재원이 부족한 탓이 크다.
한국은 디자인 교육을 시작한 역사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짧으며,
디자인은 서양의 학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입장일 수 밖에 없다고 합리화시킬 수만도 없다.
같은 동양이지만 우리보다 디자인에 수십년 일찍 눈을 뜬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서양의 디자인에 개방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중국이
그들의 독특한 중국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을 보면
단지 우리보다 늦게 시작해서 왜 더 잘하는 거야! 라며 배가 아픈 것을 넘어서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것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지 않은가.
중국은 비록 많이 손실되었다 하더라도 필사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지켜왔고
현재도 역사가 있는 중국식 집에서 중국식 옷을 입고 중국식 거리에서 중국식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상들이 남긴 문화를 보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온 문화적 재원이 있었기에
새로운 개념이 들어오더라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그것을 소화하고 변형할 수 있는 개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적 재원이 열악하다.
과제이든 사명감에서든 한국적 디자인을 시도한적 없는 디자이너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물을 만족스럽게 끝낸 디자이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적 디자인 이라는 단어 앞에서 느낀 막막함과,
한국의 미술적 요소를 찾기 위해 없는 자료를 찾아 진땀뺀 기억,
왜 이렇게 어렵고 찾기가 힘들고, 거기서 거기일까,
열심히 하긴 하는데 왜 이렇게 안예쁠까, 로 마무리 된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결론은,
'한국적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였다.
도대체 왜, 삼청동 골목을 관광하듯이 구경하러 가야만 한국의 집을 볼 수 있는가.
한국의 집은, 한국의 옷은, 한국의 거리는, 한국의 생활은 내 주변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는가.
왜 굳이 '찾아 나서야만' 한국을 알 수 있는가.
자연스럽게 있어야만 하는 우리의 문화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일본인들이 악의를 갖고 문화재를 부수고 보물을 훔쳐갔던 일들은 분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의 기도처였던 서낭당과 돌무더기를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부수고
초가집을 구질구질한 가난의 상징이라며 현대식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 한국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식민지 역사의 수십년간 잊혀진 전통도 서러운 마당에 왜 우리 손으로 우리 문화를 없애야만 했던 것인가.
헛똑똑한 그들의 논리로 정리된 지금의 서울은 극명하게 깔끔하다.
랜드마크만 극명하게 전통적이고 나머지는 극명하게 현대적이다.
찾아 나서지 않으면 생활 속에서 전통적 한국의 모습을 찾기 힘든데
이런 속에서 나온 디자인이 한국적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생활 속 감성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표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그리고 사진으로 남기고
그런것들을 바탕으로 자란 감성으로 디자인 능력을 키워나가는 사람들이 디자이너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에게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판대와 피맛골은 겉으로 보기에 깔끔하지 못하므로 없어져야 할 것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없기 때문에 우리만의 다른 감성을 주는 소중한 문화재원이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지금이라도 부족한 문화재원을 보호하고 생활속에 복원시키는 일이다.
진심으로 우리나라 디자인이 성장하는 것을 원한다면,
아름다운 한국적인 디자인을 보고 싶다면,
한국만의 개성있는 문화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발전시키는 것이 힘들다면 제발 지금 있는 문화만이라도 우리 손으로 직접 허물지는 말아라.
한국 문화는 궁 안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피맛골에도, 노점상에도, 떡볶이 안에도 있다.
그 개그맨 뺨치는 떡볶이 할머니를 빨리 다시 돌아오게 해달란 말이다!!!
나의 출출한 겨울밤엔 반드시 떡볶이가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