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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2.01 소설가 조경란의 맛있는 낭독회 2

혀 - 조경란

2008. 6. 2. 22:15 from Z_2/%_3




추억이란 것은 마치
 모서리가 세 개인 뾰족한 삼각형처럼 생겼을 것 같다.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 그것은
가슴속에서 빙빙 돌기 때문에
모서리에 찔린 마음이
너무 아프다.
계속 떠올릴수록 그것은
바람개비처럼 더 빠르게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고
 마음은 점점 더 아파진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언젠간 모서리가 다 닳아져서
더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그런데 나는 내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모서리에 찔리고 있는 이 아픈 상태가
 나를 깨어 있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건
지나간 일이 비록 오래 전의 것이라고 해도
 늘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tripleZ :


 

        소설「나는 봉천동에 산다」중에서

조경란


“아버지, 뭘 기도하실 거예요? ”


“기도는 무슨 기도, 내가 더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냐.

그런데 말이다, 저 달을 들어내면 하늘엔 뭐가 남겠냐? ”


“…… 글쎄요.”


“저 달을 들어내면 하늘에 구멍 하나 남질 않겠냐. 너는 작가가 아니냐.

모든 사람의 생에는 구멍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니라.

그 구멍을 오래 들여다보거라.”


“…… 아버지, 전 어느 땐 양말이나 신발 신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무슨 그런 말을 하냐.”


아버지는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달빛이 너무 밝았다.


“아부지, 저 그냥 여기서 오래오래 살까봐요.”







소설「혀」중에서
조경란

……사랑은 나한테 무엇이었을까, 나는 도마 위에 칼을 내려놓는다.

사랑은 음악과 같았다.

배우지 않고도 그것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반응하는.

사랑은 음악과 같았다.

실제로 먹어보지 않고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고 식욕이 느껴지는.

사랑은 음악이고 음식이다.

환희에 찬 순수한 아우성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밀어닥쳤다 탄식하게 하고 고양되며 격렬하게 하는,

혼란에 빠질 수 있으며 갈망으로 목이 타오르게 하는,

단순하게 시작되어 더 이상 숨죽이고 있을 수 없게 하는,

온몸을 자극시키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것.

정신적인 만족감과 육체적인 만족감을 동시에 주는 것.

사랑이 그런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 …

그는 다시 혀 요리 한 점을 입속에 넣고 우물거린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지?”


“내 요리엔 특별한 것이 들어 있잖아.”


 “입 속에서 힘센 사람 두 명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힘이 느껴져.
그게 그냥 피 튀기는 결투가 아니라 서로 어떤 조화를 이룬 싸움 같아.
맛의 싸움 말이야.”


“정말?”


 “응. 맛이란 게 진짜 살아 있어서 내 혀 위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것 같은걸.”


맛은 속일 수 없다.

그의 동공이 크게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 점씩, 한 점씩 그는 신중하게 씹고 삼켰다.

그는 점점 더 나의 새로운 요리에 빠져들고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모든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되돌아보면 행복했던 시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서로를 끌어들인 매혹의 첫 순간도.

하지만 이젠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땅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차있지만

모든 것은 태어나는 순간에 죽어간다.

어떤 것은 번성하고 어떤 것은 쇠락하고 어떤 것은 다시 태어나며 어떤 것은 흘러가기도 한다.

살아 있는 것은 차례차례 바뀐다.

중요한 건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게 아니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는 눈물 한 방울을 얼른 손등으로 훔치곤 포크로 혀를 한 점 찍어
그의 붉은 입술 사이로 부드럽게 밀어 넣는다.






 



사랑하는 낭독의 발견.
두달여만에 기다려앉아 보았는데.
작가 조경란씨가 직접 읽어주는 그녀의 글은
조분조분 예쁜 입으로 말하는 그녀의 생각은
가슴 속속속에 딱딱하게 숨겨놓았던 세포까지 찾아내 어루만져주었죠.
마지막에 국자이야기의 일부를 읽어주셨는데.
<혀>의 여운이 계속 남아 서러워하는 바람에 들리지가 않았어요.

감성의 교류.
서로의 감성을 발견하고 기뻐하고 위로하는.
감성의 교류.
아주 중요하면서도 아주 슬픈 이야기.

       


Posted by triple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