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2012. 9. 20. 04:09 from Z_1/z

 

 

 

 

전에도 그러했지만 나는 역시 메이저 취향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조명하는 곳 보다는 음습한 곳에 웅크리고 있지만 정말 아름다워서 자꾸만 보게 되는 것들에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가요? 그래서인지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힘들고요. 그러던 와중에 취향이 잘 통하는 타국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소소하고 귀여운 프로젝트들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임에도 볕은 따뜻하고 겨울이 오면 더 포근해 질 것 같아요.

 

어런 저런 일들로 인해 나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 불쑥 든 생각은 소극장을 열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끼던 작은 극장들이 사라지고 멀티플렉스들이 대신 그 자리를 꿰차면서 받게되었던 작별 메일들을 기억합니다. 어려운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좋은 영화를 상영하려는 의지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데에 대한 미안함과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분노가 섞인 어쨋든 공식적인 안녕의 메일들 이었지요. 예술, 독립영화의 대중화를 내세우며 그것을 일종의 이미지메이킹으로 활용하고 있는 마켓팅에는 영혼이 없지만, 영혼따위가 배불려 주지는 않는다는걸 그들은 잘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나의 소극장은 배고픔을 전제로 시작하게 되나요? 상영관은 딱 하나고, 상영하는 영화들은 온통 내 취향이고, 보통의 소극장보다도 작아서 소소극장 정도인데, 뻔하게 경영이 어렵겠죠? 안마당 같은데서 상영하면서 그 안 공간은 먹고 마시면서 영화보고, 실내로 들어오면 카페로 이어지는 소소한 공간. 친구들이랑 종종 모여서 파티도 하고 꿈 얘기도 하고 좀 마시다가 강아지 고양이 밥도 주는. 소소극장을 이름으로 가져온다면 영어로는 so so theater가 될텐데, 그냥 그런 극장. 이거 좀 맘에 드네요.

 

지금과 유사하게, 땅에 발을 딛지 않으면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을 아로 새겨놓고 마루바닥에 누워서 강아지랑 타령 하던 시절이 생각 납니다. 하루키 아저씨는 스틱 기어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사람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했었던가 아무튼 비슷한 말을 했었구요. 나는 원래 남들과 똑같은 트랙을 따라 가는 사람이 아닌데 그 트랙에 맞추어 재단하려고 했더니 당연히 파열음이 많이 들렸던 것 같아요. 이제 다시 찾을 때가 된 것 같아요.

 

무튼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고 있고, 돌아가게 되면 구의동 지하철 역에 앉아서 빛 날아다니는 서울을 보며 두유 마시며 지하철 기다릴 생각에 너무 좋아요.

 

+plus, 모션오그래퍼에서 보니 비메오에서 개인이 만든 작업을 감상하고서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팁을 주는 기능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사실 비디오를 업로딩 하면서 이것 또한 지적 재산을 공유하는 것인데 그 가치를 돈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이것 또한 뮤직 스트리밍과 비슷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물론 지금은 자발적으로 팁을 주거나 또는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무적으로 이용료를 내야 볼 수 있게 된다면 엄청난 반발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한국에서 뿐 만이 아니라 많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제로 개인들이 자본과는 무관하게 소신껏 작업을 하고 있고, 모션오그래퍼에 올라오는 상당한 양의 포스팅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친구와 하고 있는 작업 역시 재정적 문제로 당장의 수익은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부턴가 잘못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Posted by triple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