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비, 니체

2014. 6. 21. 20:35 from Z_1/z



잡념과 잡념으로 꽉 찬 오후를 보내다가 일주일째 방치 되었지만 기특하게도 잘 크고 있는 베란다 화분들을 본다. 바질이 제법 자랐고, 이제 순을 솎아주고 몇몇은 화분을 옮겨 심어줘야겠다 싶을 정도로 잘 크고 있고, 신기하게도 정말 향긋한 바질향이 난다. 화분 물을 줄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비가 내린다. 


비가 바질과 알로카시아를, 창틀을, 지붕 위를, 차 위를, 빨래 위를 튕기며 흐른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이며,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가 있으며, 각자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의 나레이션이 머릿속에 들어와 비대해 졌다. 나의 영화는 어떻게 마무리 될까. 100년 인생이라는데 32살의, 사실 30년 을 조금 넘게 산 나로썬 영화의 도입부를 이제 막 지난 셈인데... 지금까지의 메인 연기자의 캐릭터를 보자면, 그녀는 좀처럼 좀잡을 수 없이 공간의 빠르게 가로지르는 핀볼과도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하여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을 움직이는 원인에 대해, 내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몇가지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어마무시하게 유치하게도 첫번째가 사랑, 그리고 따라오는 것들은 예술, 창작, 아름다움, 평화.


사랑은 나를 흔들고, 머리칼을 흝날리며, 몽롱하게 하고, 꿈꾸게 한다. 또한 절망하고 좌절하게 하며, 나의 존재의 하찮음을 직시하게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용기와, 그와 동시에 그 모든 용기와 확신이 얼마나 부질없는가에 대한 공허함까지. 내 인생을 선명하게 하는 그 짧은 시간이 지나가면 영원히 존재하는 이별은 나를 사유하게 한다. 사유의 기간은 한없이 찌질하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견뎌낸 후의 기쁨을 기억한다. 나는 여전히 외로웠지만 강해졌었고, 자유로웠으며, 생동감으로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되며, 나 자신만으로 단단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예술을 탐구했었다. 예술은 사랑보다 더 상위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그 어떤 심리의 변화도, 예를 들면 고통도, 기쁨도, 불안함도, 절망감도, 희망도 위로하는, 나를 존재하게 하며 성장시키는 존재의 이유라는 생각을 했었다. 니체는 모든 가치에 대해 꽤 시니컬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종교, 도덕, 심지어 과학까지도 부정한다. 그렇지만 그 모든 가치가 소멸되어 마땅하다 치더라도 예술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긍정하며 독려한다. 여러 면에서 논리적, 이성적이며 독설적이기에 존경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현실에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다른 부분은 모두 버린다손 치더라도 예술에 대한 부분은 언제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내가 경험한 예술의 힘을 그도 역시 찬양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상가로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행복과 좌절과 고통을 느끼고, 많은 영화와 책과 그림과 여행을 겪으며 나만의 언어로 고유한 철학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반드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여러가지 가치에 대해 두서없이 생각하다가 이런 저런 단편적인 이미지 클립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추상적이지만 분명히 내가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마음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을 생각하면 눈이 아득해 지면서 기쁨이 차오르며 평화로워진다. 


다음 단계를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봐야겠다.




  

  

Posted by triple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