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까지 가는 길의 언덕에서 작은 푸들이 경망스럽게 뛰고 있었다.
털의 컬은 힘있게 바글바글했고 그 뜀의 성격과 참 잘 맞아보였다.
그 푸들을 보며 웃고 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푸들이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고
어머나 좋아서 막 만지고 안아주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푸들은 주인없이 너무나 신나 있었다.
"아이고 너 혼자니? 주인은 어디가고 혼자 나왔어? 목걸이도 없이?"
대답도 안하고 좋아서 날뛰는 작은 푸들은 내 손에서 빠져나와 수풀속으로 들어가 어떤이의 창문을 긁으며 앙앙 거렸다.
손에서 빠져나간 푸들을 보며 앉았다 일어나는데 집열쇠가 아스팔트 바닥에 쨍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논현동이 이렇게 조용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쇳소리는 크게 울렸다.
푸들의 주인을 기다려 주려고 한참 서 있었지만 강아지이름 비슷한 외침이 전혀 없었고 기다림이 슬슬 지루해질때쯤
강아지가 자꾸 창문을 긁은 집의 어떤이가 밖으로 나왔고 무책임하게 나는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그때부터 이상한 금속음이 났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방금전 떨어뜨린 쇳소리의 다른 높낮이로 골목 구석에서 울렸다.
이건 정말 일렉트로닉에서만 들을 수 있는 높은 음이다.
내가 매일 지나치는 모퉁이 집을 여전히 지날때 나는 어떤 문을 보았고 그 문은 열려있었고 그 문 안은 까맸고
소리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처럼 소리가 넘치고 있었는데 아 무서워 빠르게 지나쳤다.
오늘 날씨는 "이렇게 가슴이 뭉클하는걸 보니 이제 곧 곧 봄이 오겠구나" 싶도록 어젯밤 옹재같은 봄이었는데
날씨가 이상한 것 보다 이상한 소리였고 이상한 퇴근길이네 하고 생각했다.
드비쉬 음악이 샤르르 왕왕왕왕왕 미미미미미 뽀빠구뽀빠구뽀빠구 귀에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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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을 잃어버린다.
지선 지순 지삼순 지삼 지술 지숨 지슴 순순 순대 순살 지시 지썬 지선씨 아 내이름이 뭐였지.
뭐라고요? 지금 저를 뭐라고 부르셨어요?
"~~, 오늘 약속있어?" 내 이름 부분만 들리지 않는다. 그 두 글자만 웅웅 울린다.
그리고 나 좋을대로 내 이름을 생각하여 듣는다.
아 내 이름은 가가였으면 좋겠다.
아니 이 순간엔 개념이었음 좋겠어. 나에게서 사람들이 개념을 찾는거지.
이것은 목걸이 없이 주인 없이 겁없이 자유에 신이난 아까 그 푸들과 다를바 없다.
그리고 그 푸들은 오늘밤을 넘기기 전에 현실을 인식하고 너무나 무서워 그자리에 엎어져 울지도 모른다.
나는 어떨까 이름을 잃어버린걸까 내 이름을 다시 받고 싶은건 아닐까 그렇게 원한대로 새 이름이 생기면 나는 좋을까.
나는 너무나 죄스러워 그자리에 엎어져 울지도 모른다.
아까 집에 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할때 갑자기 떠올린 주인잃은 푸들에 대한 걱정과
이대로 건망증이 심해지면 내 이름까지 잃어버릴 수 있을까 하는 내 뇌에 대한 걱정으로 생긴 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