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콩쥐(6)
우리가 반지하에서 살고있었을적
여름에는 집문을 열때 곰팡이의 급습을 받아야 했지만 그날은 달랐어.
엄마가 올라오시는 날이면 집공기는 언제나 청결했고 갓 지은 밥의 단내가 풍겼는데.
그날이 그런날이었어.
그런 냄새를 맡으며 집문을 연 순간 거기엔 어떤 작은것이 있었는데.
손바닥보다 작고 하얀 너는 아장아장 걷다가 문소리가 나는 쪽으로 짧은 고개를 돌렸고.
그 까만 눈과 내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주체할수 없이 기뻐 문도 닫지 못하고 굳어버렸어.
2.
모래(15)
내가 열세살때 친구들이랑 와구와구 뛰어다녔을 때였는데
어쩌다보니 나는 성당뒤의 정말 높은 절벽에 메달리게 되어버렸어.
여기서 난 뛰어내릴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고 겁에 잔뜩 질려있었어.
그때 나타난 너는 내 두 팔목을 잡고 쑥 끌어올려 그 정말 높은 절벽위에 세워주었어.
세상에. 나 지금 엄청난 힘에 휘둘렸어. 너에게 나의 10대를 의지할 수 있게 해주었던 순간이었지.
지금 너와 나의 20대는 아래가 보이지 않을만큼 높은 절벽의 끝에 대롱대롱 메달려 우울함에 잔뜩 질려있어.
그땐 나 혼자 메달려있었지만 어찌된일인지 그때에 나를 끌어올려준 너도 내 옆에 메달려있구나.
3.
서울(8)
서울의 밤은 살아있었어.
끊임없이 수근수근대는 발자욱 소리, 경적 소리, 빛 소리들이 어린 나를 잠들수없을만큼 설레이게 했어.
서울의 밤은 한번도 까맸던 적이 없어.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우주의 까만색을 서울하늘은 보여주지 않아.
서울의 밤은 끝없이 길었어.
밤동안 할수있는 일은 너무나 많고, 창조의 대부분이 밤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서울에서 알게된 진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