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천국의 시그널송은 회사에서 들을때 더 좋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럴듯도 하다.
감정 그래프의 격차가 심한 나는 회색인간이었다가 방긋 웃는데 이 시그널송과 함께 채도가 올라감을 느낀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시그널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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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송을 들은지 40분이 지나버려 지하철이 끊길것같았고
그래서 헉헉대며 뛰었고 목에선 피맛이 났지만
나는 좋았어요 눈이 오니까 미끄러졌지만 나는 좋아요 눈이 오니깐요.
아침에 할까말까 망설이다 턱 두르고 나온 목도리는
녹은 눈에 머리가 젖지않게 해줘서 고마웠어요.
마지막 지하철을 타서 다행이었고 나는 야근은 꺼리지만 밤에 걷고 싶어 안달인데 평소에는 참지만
야근을 핑계로 어쩔수없이 새벽 한시에 어린이대공원 옆길을 걷는것을 정말 좋아해요.
눈이 정말로 내리고 있었습니다.
라디오는 눈때문인지 오늘따라 설기설기 내려앉은 눈만큼 파직 거렸지만 그래서 왠지 더 눈오는날 같았어요.
가로등불에 반사된 눈 결정은 걸음을 뗄 때마다 나를 따라오며 반짝였고, 너무나 아름다왔고, 이런것이 보물이라고 느꼈어요.
내가 보석에 관심이 없는건 그보다 아름다운것들이 많음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살면서 정말 신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만물이 자기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색색을 가지고 있다는걸 볼 때와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인데, 어떻게 이 땅세상에 하얀 보석이 내릴 수 있는걸까요!
이 얼마나 우주적인 이벤트인지 모르겠어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잘 되어가고 있어서 좋아요.
모두 힘들다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지만 우린 다 멋지게 잘 되어가잖아요.
유난히 내 친구들은 제멋대로 이지만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더 멋진듯 해요.
제멋대로라서 귀엽고 알록달록하고.
나는 눈을 하나 먹으려고 메롱을 하고 걸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지나가면 다시 합 하고 차가워진 혀를 다시 따뜻하게해서 다시 메롱을 하고 한참 걸어서
근성있게 눈 한송이 먹었으니 이제 몇일간은 힘이 날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는 내가 여름날 길을 걸을 때 궁상맞게 울게했던 노래가 나왔고
오늘은 울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불렀을 뿐이었죠. 그 노래가 나와서 너무 좋았어요.
언제나처럼 길은 끝났고, 내가 조금 뛰면 건널 수 있는 신호등은 파란불이었지만 나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다음 신호를 기다렸고, 나는 정말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머리에 눈이 수북한 차림으로
오뎅바 문을 우르르쾅쾅 열고 뜨거운 정종한잔! 을 고독하게 마시고 싶었지만, 집으로 향했어요.
집에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엄마랑 같이 살고 싶고 아침잠에 고소한 김밥써는 소리를 맡으며 일어나서 따뜻한 김밥 꼬다리를 먹고싶어요.
아직 찬공기일때 집을 나와 청바지에 야구잠바 야구모자를 쓰고 대전엑스포로 수학여행을 가고싶어요.
그래서 집으로 향했고 나의 눈오는날의 퇴근길은 여기까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