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시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일반적인 하루는 벌써 저물고 있었다.
민증을 찾고 슈퍼에 가는 길에 갑자기 저녁에 할일이 조금 생겼다.
시간이 커피 두컵 정도 남아서 귤을 삼천원 어치 사가지고 오랫만에 동네 스타벅스에 갔다.
먼저 미안한 사람한테 미안하다고 귤에 적고 내가 까먹을 노란 귤 두개와 노란 책을 꺼냈다.
저번주에 선물받은 이석원의 책을 마저 다 읽을 심상이었다.
책장이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을것 같은데 오늘의 나로썬 후르륵 다 읽어버리기엔 아깝다 생각됐다.
자의로 쓰는 일기에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펜 대신 키보드로 일기를 쓰게 되었다.
정말 말할 수 없는 것은 쓸 수 없다는것과 시선이 의식된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지만
일기는 최대한 의식없이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얼굴 빨개질만큼 유치하고 아 내가 이걸 왜썼지 싶을때도 있지만
순간순간의 진심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점점 더 진정성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자유를 끊임없이 쫓으면 나는 과연 행복할것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역시나 얻는것 만큼 포기해야할 것들도 만만하지 않을 것같다.
지금 엄청 평화롭고 자유로워지고 있는데, 이런것들은 미리 인지해둬야겠다.
네 발에 양말을 신은 야생마 그림을 그렸다.
까페에 혼자 앉아있는걸 좋아하는데, 커피값이 폭리라는걸 알면서도, 이건 된장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느 공간보다도 생각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 개인작업의 대부분은 커피숍에서 나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며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창밖의 사람을 다른 속도로 대할때, 예를들어
커피숍 안에 앉아 윈도우 밖의 걷는 사람을 관찰할때,
차안에서 차창밖에 있는 사람 옆을 빠르게 스쳐갈때,
고속도로에서 풍경은 쉴새없이 지나치며 옆 차에 타고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때,
그 관계가 참 재미있다.
다르게 살아온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빗줄기처럼 z축으로 지나간다는 느낌은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설명이 안된다. 아무튼 오묘하다.
매장 마감시간이 돼서 마저 다 읽지 못하고 나왔다.
성격이 노래만큼 섬세하다고 느꼈다.
예민한 사람과 매일 대화하던 시절이 다가왔다.
생각이 바람개비만큼 퍼덕거린다.